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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 나를 가두다 – 잠금 증후군

by →다솜네텃밭 2016.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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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을 전공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수많은 증후군들. 그 중 잠금 증후군(Locked-in syndrome)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아마 들어본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2000년대 후반, 이 질환을 소재로 한 실화 바탕의 영화 ‘잠수종과 나비’가 제작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적이 있으며 그 외에도 이 질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가 제법 있었다.

 

 

 

 

 

흔한 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희귀병은 아닌 병. 내 몸속에 갇혀 나와 싸워야 하는 병인 잠금 증후군! 신경과 의사를 하다 보면 험한 환자, 안타까운 환자를 종종 만나지만 단언하건 데 잠금 증후군 환자보다 가련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잠금 증후군은 주로 뇌졸중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교뇌 부위에 뇌졸중이 크게 오게 되면 교뇌(뇌에서 팔다리로 전달되는 운동신경통로, 팔다리에서 뇌로 올라오는 감각신경통로, 얼굴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신경핵, 눈동자를 움직이는 신경핵 등이 위치한다)의 기능이 마비가 되어 눈꺼풀을 감고 뜨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교뇌는 고혈압성 뇌출혈이 잘 생기는 부위 중 하나로 교뇌 출혈로 인해 이 증후군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 10여년 전 50대 남자가 응급실에 혼수상태로 실려 왔다. 혈압은 수축기 혈압이 220이 넘었고 사지의 완전 마비에 반사는 하나도 없었다. CT 촬영 결과는 상당한 양의 교뇌 출혈이 있었다. 당시 수술적 치료는 불가능한 상황, 결국 대증적인 약물 요법을 위해 신경과로 옮겨져 입원 치료를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의식 자체가 나빴다. 뇌신경자극제등 도움이 될 만한 약은 모두 쏟아 부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환자는 점차 눈을 뜨고 외부 자극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지는 완전히 마비가 되어 손가락 끝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말도 할 수 없고, 음식도 먹을 수 없다. 웃음을 지을 수도 없다. 팔다리에서 오는 어떠한 감각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살아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며 꿈도 꾼다. 하지만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곳이라고는 눈꺼풀을 감고 뜨는 것이 유일하게 그가 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가 또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흘리는 것 뿐 이었다. 의식이 깨어나면서부터 그는 처음엔 살아 있는 것에 감사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지 않아도 좋아지지 않는 상황에 답답했을 것이다.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깨달았을 때에는 절망에 몸부림 치고 싶었지만 사지가 마비되어 몸부림 칠 수조차 없었다. 감옥보다도 더 지독한 감옥에 갇힌 것이다. 이후 환자는 거의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다. 상황을 설명해 주어야 할까? 좋아질 것이라고 거짓말을 해야 하나?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다는 것은 일단 알리지 않기로 했다. 우린 몇 가지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우선 흔하게 쓰는 단어들을 10여장의 카드로 만들어 카드를 순서대로 보여주고 맞으면 눈을 감고 있으라고, 아니면 눈을 깜빡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환자의 회진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의사소통을 한다는 데에 그는 기뻐하는 눈치였고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보호자와는 ‘ㄱ’부터 ‘ㅎ’까지 적힌 글자판과 모음이 적힌 글자판으로 대화도 했다. 한 시간에 몇 글자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러갔다. 여러 차례 폐렴도 지나갔고 그러면서 몸의 면역력도 저하되어 갔다. 그러면서 점점 좋아질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수시로 맥박이 변동하고 추측이지만 우울, 불안증을 보이는 것 같았다.

 

 

 

 

마지막 폐렴에 걸렸을 때 글자판에서 “죽 고 싶 어” 라는 글자를 골라냈다. 환자의 의지가 사라져서 인지 그동안 수많은 병치레 때문인지 삼차, 사차.. 독한 항생제를 쓰고 호흡기까지 달라붙었음에도 결국 패혈증으로 진행했고 의식 역시 나빠진 상태에서 보호자들의 원에 의한 심폐소생술 거부, 결국 사망하게 되었다. 진짜 나비가 되어 자유를 찾아 날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이 환자를 보면서 매우 가슴 아팠던 건 그가 쓰러지는 와중에서도 가족을 구했다는 것이다. 가족을 태우고 나들이 가던 중 일어난 일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 도중 갑자기 아무 말도 안하더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까지 의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여 갓길에 차를 대고 즉시 쓰러진 그였다. 뇌출혈로 사지가 마비가 오는 상황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는 그것을 해냈다. 하지만 의학적 측면으로만 보았을 때 그는 참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수많은 의사들이 혈압약 복용을 권유했지만 거부했던 그였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마비가 되어 쓰러지면서도, 뇌출혈로 극심한 두통을 겪으면서도 안전하게 차를 세운 그였지만 미리 건강을 챙겼더라면 더 나은 결말을 보았을 텐데 하는 매우 아쉬움이 컸다. 세상 어떤 감옥보다도 더 잔인하게 그를 억압하였던 몸을 떠나 자유를 찾아 잘 날아 갔기를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빌어본다.

뇌졸중센터 신경과 이형석 과장

<전문진료분야>
-뇌졸중 / 뇌전증(간질) / 두통 / 어지럼증

<약력>
-신경과 전문의
-충북대학교병원 권역심뇌혈관센터 임상교수
-대한 신경과학회 정회원
-대한 뇌졸중학회 정회원
-대한 뇌전증학회 정회원

 

 

 

 

 

 

출처: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396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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